‘해안 모래의 저장고’이자 ‘지하수 저장고’로 불리는 해안사구. 바다모래가 바람이나 파도에 의해 뒤로 쓸려 내륙 쪽으로 운반돼 해안선을 따라 쌓인 모래언덕이다. 짙은 농도의 염분을 머금은 바람, 과도한 햇빛과 바람으로 수분이 결핍된 상황, 파도로 인한 서식지 불안 등 열악한 조건에서 수천년 형성된 독특한 자연이다. 폭풍으로부터 해안지대를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도 한다.

동해안 대부분 해안사구는 해변 관광지, 농경지, 해안도로, 골재 채취 등 개발과 군사시설 주둔 등으로 인해 훼손된 데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자연 침식까지 보태져 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뒤늦게 2000년 환경부에서 ‘사구 보전추진계획’을 수립했고 2002년 ‘해안사구 보전관리 지침’을 내놓았다. 해안사구 실태 파악과 목록화 작업 과정에서 동해안에서 독보적으로 돋보인 곳이 강릉 ‘하시동·안인사구’이다. 동해안 사구로는 최초로 2008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바람에 주로 영향을 받는 서해안과 달리 파도 영향을 더 크게 받는 동해안은 모래 굵기가 다르고 지형이 독특하다. 멸종위기생물인 수달, 하늘다람쥐, 삵 등 풍부한 서식 생태계를 보유한 점도 인정됐다.

명현호 연구자는 해안사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에 들어맞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첫째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 모래의 양, 둘째 일정한 풍속 이상의 지속적인 바람, 셋째 모래를 고정해 주는 동식물 식생이다. 수천년 세월에 걸쳐 이런 조건이 부합돼 경관 감상의 호사 기회를 누리는 것이다.

요즘 하시동·안인사구와 안인항에서 모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멀쩡하게 항구를 출입하며 조업을 해오던 안인항의 어선이 출어 포기로 묶여있다. 1년 전부터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모래가 지금은 아예 항 입구를 막을 정도다. 긴급하게 포크레인을 투입했으나 파도에 의해 끝없이 밀려오는 모래를 퍼내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반대로 하시동·안인사구는 모래가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돌망태기를 쌓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모래 이동 변화를 화력발전소측의 해상 신설 설비 영향으로 보고 있다. 발전소 측에선 과학적인 근거를 요구하는 모양인데, 주민 증명 책임으로 떠넘길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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