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포함 19개 의대 사직서 제출 성명
전의교협 "입학 정원·정원 배정 철회해야"
정부 "의대 증원 기반 의료개혁 완수" 강경

▲ 의대 교수들이 당초 밝혔던 대로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25일 오전 서울의 한 상급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대 교수들이 당초 밝혔던 대로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25일 오전 서울의 한 상급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2000명 증원’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내비쳐 갈등 양상의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해도 당장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은 아니어서 큰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병원들은 의료 공백 등 현장의 충격을 완화할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 지난 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의대 증원 관련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의대 증원 관련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19개 의대 “오늘 사직서 제출” 성명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이날 소속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비대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평의회도 최근 사직결의문을 통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거부한 정부의 독선을 저지하고 정부의 폭압에서 전공의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25일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앞서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평의회는 전체교수회를 열고 75.3%의 사직서 제출을 결정했으며 지난주 교수 정원이 10명인 필수의료과목에서 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이날 아침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서 각각 모여 온라인 총회를 연 뒤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총회에는 다수의 고대 의대 학생들도 참관했으며, 이들은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6시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할 예정이다.

가톨릭대의대 교수들은 26일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일정 등을 논의하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이와 관련해 저녁에 회의를 개최한다.

전의교협은 사직서 제출에 전국 40개 의대 중 “거의 대부분이 동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 ‘2000명 증원’ 의료계-정부 입장차 팽팽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늦추고 의사들과 대화에 나설 방침을 밝혔음에도, 의대 교수들이 예정대로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2000명 증원 백지화’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의교협은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과 정원 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이번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 등은 예정대로 금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의대교수비대위도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원광대병원의 한 교수는 “어제 한동훈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처럼 보도됐지만, 교수들의 분위기는 다르다”며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알맹이가 없고 공허한 이야기만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사직서를 강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선 지난 24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대위원장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전의교협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의교협은 이 자리에서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먼저 철회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피해 볼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계 간 건설적 대화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계도 정부의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말씀을 저에게 전했다”며 “저는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답변드렸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2000명 증원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의대 증원’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료현장 혼란은 아직… 의료공백 발생 대응책 마련 분주

강원도 소재 병원들은 병상 축소, 진료 일정 조정 등 현장의 충격을 완화할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교수평의회가 사직서 제출 의사를 밝힌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병원 병상 및 병동 축소 운영을 고려하고 있다.

의사들 또한 최근 과목별 특성을 고려해 입원 치료와 수술 등 근무 시간을 줄이고 4월부터 외래 진료도 최소화하는 등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이미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인해 정형외과 병동 운영 중단과 전체 병상의 10%를 축소 운영 중인 강원대병원과 강릉아산병원도 추가 대책을 검토 중이다.

강원대병원 관계자는 “이미 의료진 피로도가 누적돼 병원 전반적으로 과부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추가 사직으로 의료공백 발생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빅5’ 병원 등 주요 병원의 경우 더 큰 혼란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오늘부터 외래진료를 축소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임이 없다. 수술은 50%가량 연기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교수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려면 주 중반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아직 사직서 제출 움직임은 없다”며 “외래진료도 전공의 사태로 기존 대비 20% 줄어든 상황 그대로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도 외래진료 축소는 없다고 밝혔다.

교수 집단사직은 병원 운영 뿐 아니라 대학 학사일정도 조정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원대 의대는 당초 3월 25일 개강할 예정이었으나 개강 일정은 내달 22일로 연기했다.

연세대 원주 의대 역시 지난 18일 개강이 연기된 이후 개강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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