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도를 기다리며’ 강릉 공연
존재 의미 묻는 대화 속 열연 펼쳐
부조리극 통해 고단한 존재 표현

▲ 최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모습.
▲ 최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모습.
‘87세 신구’, ‘83세 박근형’ 두 노배우는 삶 자체로서 작품을 완성시킨듯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춘천과 강릉에서 연달아 매진되며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최근 강릉 공연에서는 150분간의 연극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작품은 1953년 초연된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꼽힌다. 배경은 해질녘 앙상한 가지의 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하나 뿐이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50년간 하염없이 기다리는 허름한 방랑자 블라디미르(디디·박근형)와 에스트라공(고고·신구)의 대화가 쏟아진다. 여기에 김학철(포조 역), 박정자(럭키 역)까지 배우들의 연기 경력만 합쳐도 220년에 달한다.

심장박동기를 착용하고 열연한 신구가 맡은 에스트라공은 “여기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목을 매자”고 박근형이 연기한 블라디미르에게 권유하고, 블라디미르는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안돼, 우리는 고도를 기다려야 해”라고 반복한다. 도무지 하나의 줄거리로는 연결지을 수 없는 내용이다. 마치 결합될 수 없는 철학자와 시인의 대화가 한 사람의 자아에서 대립하는 듯 느껴졌다. 그들은 생각이 달라도 “또 너구나”라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만담과 진지함을 오가는 배우들의 쇼트패스와 내용을 알 수 없는 럭키의 독백까지 기다림과 삶에 대한 성찰을 안겨줬다. 작품 전체를 해석하기 보다는 배역에 충실한 인물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다. 존재의 고단함 속에서도 ‘연기’의 끝을 붙잡고 이어온 그들이 고도를 기다려온 인물 자체가 아닌가 싶다.

고도의 의미는 ‘신’, ‘자유’, ‘희망’, ‘구원’, ‘죽음’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지만 답은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도’가 무엇인지는 따질 필요도 없다. 그들은 더 기다려봐야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고도는 “내일 다시 온다”고 전했다.

중요한 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일 수도, 그것이 ‘헛것’임을 깨닫고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라는 대사도 이와 맥락이 닿는다.

공연을 관람한 김창균 시인은 “예전에 읽었고 연극으로도 봤던 작품이지만 두 배우의 연기를 직접 보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며 “맥락이 없는 부조리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부질없기도 하지만 인간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 등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줬다”고 말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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