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남는 와인향처럼 긴 호흡으로 무르익는 농촌생활
자연 경관·맑은 공기 반해 귀농
소박한 집·정원 인생 2막 꿈꿔
와이너리 ‘살롱드마차리’ 조성
맨발 걷기·명상 트레킹 체험 등
여유로운 삶 지향 복합문화공간
영월 사과·꿀 사용 와인 생산
유럽 양조용 포도 직접 재배

도시에서 숨 가쁘게 살다가 느린 속도로 인생 2막을 살기로 마음먹고 귀농 후 영월 북면 마차리에서 유럽 양조용 포도를 직접 재배해 와이너리를 일구고 있는 윤보용(57)씨.

또 그와 함께 살롱드마차리(Salon de Machari)와이너리를 공동으로 설립한 윤권상 교수는 1979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 과정 중 와인양조를 시작한 우리나라 와인양조

1세대이다. 강원대 교수 은퇴 후 본격적으로 유럽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 양조를 직접 연구하면서 국내 와인 양조 기술 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 실력자기도 하다.

이 두 사람은 지인인 지헌 김기철 도예가의 소개로 인연이 돼 영월에 와이너리를 만들기로 의기 투합해 2022년부터 포도 삽목과 와인 양조 등을 함께 하고 있다. 83세의 나이를 초월한 열정과 40년 이상의 와인 양조 경험을 보유한 윤 교수로부터 포도 삽목부터 양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익혀온 그가 만든 살롱드마차리의 와인은 맛과 깊이의 특별함으로 벌써부터 와인 애호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어 매우 성공적인 귀농 사례라고 볼 만하다.

▲ 윤보용(오른쪽) 대표와 살롱드마차리 와이너리를 공동으로 설립한 윤권상 교수
▲ 윤보용(오른쪽) 대표와 살롱드마차리 와이너리를 공동으로 설립한 윤권상 교수

■영월로 귀농하게 된 동기는

윤보용 대표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우연히 영월 마차리에 왔다가 영월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맑은 공기, 서울에서의 편리한 접근성 등이 마음에 들어 2020년부터 거주하기 시작해 벌써 4년차를 맞았다.

그가 살고 있는 마차리는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첫 번째 탄광이 있던 지역이다. 마차리라는 이름은 절차탁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이름의 마을에서 살롱드마차리라는 이름을 짓고 터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특별히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귀촌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평생을 도시에서 보내기 보다는 느리게 살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귀촌을 결단하고 실행했다.

주변에 귀촌을 한다고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특히 친구들은 ‘6개월이나 1년 안에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온다’는 내기를 할 정도로 그는 귀촌과 어울리지 않는 배경을 가졌다.

그러나 벌써 4년차로 귀촌에서 귀농으로 전환하고 2년차 농부로 변신했으나 도시의 친구들은 아직도 신기해 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모로 우리들의 미래는 다양한 분야로 열려 있다고 생각된다.

▲ 와인을 살펴보고 있는 윤보용 대표
▲ 와인을 살펴보고 있는 윤보용 대표

■귀촌을 준비하는 과정은

영월로 이사 간다고 하니 친형님과 같은 원주 흥업면 터득골 북샵 나무선 대표가 천호스님이 만든 서각작품을 선물로 주셨다. 그 작품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새겨져 있다.

은퇴가 가까워지고 있을 즈음에는 북샵을 방문하면서 ‘인생 2막에는 자연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은퇴를 해도 도시에서 거주하면 도시의 바쁜 리듬을 따라가야 하고 생활도 그동안 누려온 소비적인 방식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와 그 준비 과정이 인생 2막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터득골 텃밭 가꾸기에 참여하기 위해 꾸준하게 원주를 방문하면서 느린 삶을 조금씩 즐기게 됐다.

처음에는 소박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귀촌을 통해 가드닝을 멋지게 하고 있는 안면도 소무에서 한 달 동안 부부가 함께 거주하며 필요한 정보를 습득했다. 그리고 귀촌한 지인에게 용접 등 필요한 기본기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목공기술도 익히고 싶은 분야라서 부부가 함께 터득골 여초공방에서 6개월 정도 배웠다. 그 덕분에 귀촌에 많은 도움이 됐다. 물론 농업기술센터 교육도 열심히 이수했다.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귀농·귀촌 교육과 치유농업 과정,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기초 과정을 이수했고 아내는 농업대학 마케팅 과정을 졸업했다. 가드닝과 관련해 파머컬처 심화과정을 함께 공부했고 평화나무농장의 생명역동농법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교육 내용도 많은 도움이 됐지만 교육 과정에서 만난 십인십색 분들과의 교제도 로컬의 새로운 삶에 활력소가 됐으며 특히 귀농·귀촌한 젊은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를 이어갔다.

땅을 구입한 뒤 곧바로 귀농·귀촌하는 것보다는 1~2년 정도 도시와 로컬을 오가며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익히는 방식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특히 로컬에 남자 혼자 와서 거주하는 분들이 많은데 가능하면 부부가 함께 자연을 즐기며 느린 삶을 살면 좋겠다고 했다. 1~2년 준비 기간을 통해 로컬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함께 이주하는 것이 정착하기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윤보용 대표와 지인들이 공유정원을 가꾸고 있다.
▲ 윤보용 대표와 지인들이 공유정원을 가꾸고 있다.

■살롱드마차리는 어떤 곳인지

처음에는 원주의 터득골 북샵처럼 산속 책방과 가든을 가꾸기로 계획하고 영월 마차리에 터를 마련했다. 그러나 북숍을 오픈하고 하루종일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것을 깨닫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래서 와이너리를 중심으로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살롱드마차리는 느슨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공유공방인 ‘이루공방’과 남자들의 공유 목공방 ‘작당’ 및 공유정원을 만들어 함께 놀고,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와이너리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 피노누아·리슬링·샤르도네 등 유럽 양조용 포도를 어렵게 구해 직접 온상에서의 삽목을 통해 포도밭에 심어 키우고 있다.

포도 열매가 아직 수확 전인 지난해에는 연구 및 체험프로그램 목적으로 영월의 사과와 아카시아꿀·안동의 청수포도로 화이트와인을 양조한 뒤 지난 2월부터 병입 및 숙성 중이다. 40여년의 테크닉과 장인정신 덕분에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와이너리 주변 임야 소나무숲 아래에는 산마늘(명이나물)이 자라고 있고, 마을을 한 바퀴 걷는 산책로는 거의 완성됐다. 살롱드마차리는 점차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와인양조 배우기와 명상트레킹·맨발걷기·산마늘 채취 및 페스토와 파이만들기·뮤직테라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이제 살롱드마차리에는 3년 동안 2000여명의 지인들이 다녀갈 정도로 매력적인 곳으로 발전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주 왔던 도시의 지인 2가족이 이 곳에 땅을 마련해 느슨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한 가족은 농막을 마련했고 다른 한 가족은 설계를 완료하고 곧 집 짓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 윤보용 대표가 와인공방에서 지인들과 와인 체험을 하고 있다.
▲ 윤보용 대표가 와인공방에서 지인들과 와인 체험을 하고 있다.

그는 로컬의 삶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고립감이라고 하지만 서울의 지인 2가족이 함께 살게 됐으나 절반의 성공은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해 행복하다고했다.

우리 세대에 완성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과정을 즐기면서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이렇게 긴 호흡이 필요한 일들은 어찌 보면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윤보용 씨의 귀농 과정은 로컬로 가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방기준 kjb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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