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수 은퇴디자인연구소장 한림대 객원교수
이덕수 은퇴디자인연구소장 한림대 객원교수

‘자유’를 의미하는 영어단어에는 두가지가 있다. ‘freedom’과 ‘liberty’이다. ‘freedom’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liberty’는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부당한 억압을 봉쇄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자유는 부당한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자어 자유(自由)는 일본에서 19세기에 서양의 ‘freedom’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이 1872년 비인대학을 떠나는 고별 강연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 수단은 투쟁”이라고 주장했듯이 자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칼뱅을 따르는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은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0년이 넘는 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기득권과 싸운 끝에 앙리 4세의 낭트칙령으로 신앙의 자유 한 가지를 얻었다. 일본 나가사키 바닷가 시마바라에 있는 하라성터는 1637년에 막부의 학정에 대항했던 3만7000명의 기독농민군이 12만 막부군에게 전멸당하면서도 자유를 외쳤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누리는 것 같은 우리의 자유도 그냥 얻은 것은 아니다. 1894년 반외세, 반봉건을 내세우며 죽창들고 봉기한 4만의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대포와 기관포로 중무장한 조일 연합군에게 쓰러지면서도 자유를 향한 외침을 시작한 이래 우리도 100년이 넘도록 외세와 독재에 대항한 싸움을 계속 이어 왔다.

이렇듯 인류사에서 시민 또는 평민이라는 대중이 실제로 자유를 갖게 된지는 얼마 안된다. 근대에 유럽의 귀족(2%), 일본의 사무라이(6%), 조선의 양반(10%) 등과 같은 소위 지배집단이 무너지면서부터이다(아직도 지배집단이 존재하는 사회도 있다). 또한 자유는 누리는 사람의 범위에 있어서, 또 그 내용에 있어 지금도 진행형이다. 자유인은 더 많아져야 하며 자유의 내용도 더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위해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며 더 나눠 갖는 시스템을 준비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소중한 이 자유가 때 아니게 무기로 등장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물론 이것은 정파주의, 진영논리, 집단 이기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일부의 전유물이었던 자유가 이제 모두의 것이 되었으므로 이 자유를 어떻게 공유하고 발전시킬지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방법을 모색해야 할텐데, 일부 집단이 오직 싸워 이겨서 힘을 갖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들에겐 이 자유조차도 목적이 아닌 싸움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권력자나 정부가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사회가 위기에 빠지기 쉽다. 가치, 정의, 국민 등은 미사여구로 전락하고 오직 승리와 힘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자유조차도 모든 권력도구를 동원해 공격수단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국민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권력자를 상대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13세기 후반 17년간 쿠빌라이 칸의 궁정에 머무르면서 그의 대사로서 온 세상을 다 보았던 마르코 폴로가 가장 사회가 안정된 곳으로 얘기한 곳이 당시 남송의 수도였던 항주다. 그 이유가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항주에서는 집안에 무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가 경험한 대부분의 집에는 불시 공격에 대비한 무기가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불시 공격에 대비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만큼 우리가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좋은 사회에서 더 이상 그 누구도 자유를 남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