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군수 심의검이 명종 15년(1559년) 거문고를 만들려고 향교 마당을 지키던 나무 한 그루를 베었다가 자기 모가지가 달아났다. 현종 11년(1670년)에도 남포현감 최양필이 거문고 재목으로 향교 앞뜰의 나무 한 그루를 잘랐다가 파직당했다. 조선조 지방정치의 우두머리를 단칼에 날린 것은 다름 아닌 오동나무였다.

오동나무는 잘 자라 15~20년이면 재목이 된다. 성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도 잘 타지도 않는다. 장롱·문갑·소반·목침 등 생활용품으로 쓰이지 않은 곳이 없다. 나막신을 만들면 가볍고 편하며 땀도 차지 않았다고 한다. 소리울림 기능은 독보적이어서 가야금과 거문고는 오동나무를 만나야 비로소 심금을 울렸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아름다운 곡조를 변함없이 간직한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나왔다.

오동나무가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공이 필요하다. 3~4년마다 옆으로 뻗어나간 잔가지를 잘라내며 몸집을 키워야 비로소 쓸모 있는 재목(材木)으로 거듭난다.

새로움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 신(新)이 있다. 매울 신(辛)과 나무 목(木), 도끼 근(斤)이 만나 하나가 된 모습이다. 사용 초기 나무를 잘라 만드는 땔감이라는 뜻이었다. 세월이 흘러 새로움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는 뜻을 지니게 됐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입만 열면 혁신(革新)을 이야기한다. 정작 쇄신 대상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은 애써 모른 체 한다. 고향 지역구에서 4~5선 하는 토호(土豪) 정치인, 국민들이 ‘이제. 좀. 꺼져줄래?’로 지목한 386 훈구대신들, 사법기관을 제집처럼 오가면서도 ‘검찰독재’ 운운하며 법치를 능멸하는 사기꾼들이 청소 대상이다.

오동나무는 도끼의 묵직한 칼날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자기 희생과 자기 절제를 통해 아궁이 땔나무가 아니라 거문고로 다시 태어난다. 혁신은 세 치 혀가 아니라 스스로를 도끼로 힘차게 내리찍는 결단으로 시작된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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