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제단을 배경으로 우뚝 선 주목. 주목은 태백산의 역사 그 자체이다.
▲ 천제단을 배경으로 우뚝 선 주목. 주목은 태백산의 역사 그 자체이다.

■한겨울에 더 빛나는 ‘영산(靈山)’의 아우라

-겨울산 미학(美學)의 백미

새해가 밝은 이즈음, 전국의 등산객들이 천 리 길 수고를 마다치 않고 달려오는 산이 있다. 국립공원 태백산(해발 1567m)이다.

▲ 태백산 문수봉의 설경. 돌탑 너머로 천제단 능선과 멀리 함백산의 원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태백산 문수봉의 설경. 돌탑 너머로 천제단 능선과 멀리 함백산의 원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 천제단과 장군봉, 문수봉이 능선을 따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태백산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신령스러운 산으로 통한다. 삼국사기 등에는 ‘신라에서 태백산을 삼산 오악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으로 받들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하고, 지금도 매년 개천절에는 천제가 봉행 되고 있다. 그래서 ‘영산(靈山)’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매년 연말연시에 세칭 기(氣)를 받으려는 등산객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드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이 선거전에 나서면서 태백산을 찾는 일이 많았던 것도 같은 이치다.

▲ 태백산 천제단. 예로부터 하늘에 천제를 올리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 태백산 천제단. 예로부터 하늘에 천제를 올리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산 마다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는 계절이 있다면, 태백산은 겨울에 가장 빛나는 산이다. 야생화가 앞다퉈 꽃을 피우는 새봄이나 철쭉꽃이 고산준령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5월 말∼6월 초도 좋지만, 태백산의 제 계절은 역시 설산(雪山)의 아우라가 돋보이는 겨울이다.

순백의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눈꽃과 상고대의 터널. 문수봉∼천제단∼장군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산 능선은 족히 1m가 넘는 심설(深雪)이 쌓이고 수은주가 뚝 떨어져야 진가를 발휘한다. 나뭇가지마다 얼음 결정, 상고대가 앞다퉈 피어나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에 투영되고, 눈꽃송이가 1500m 고지 능선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지상 최고의 잔치판을 벌여야 비로소 태백산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 태백산 천제단∼장군봉 정상 능선의 눈꽃 바다.
▲ 태백산 천제단∼장군봉 정상 능선의 눈꽃 바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태백산은 일망무제, 산그리메가 또한 일품인 곳이다. 문수봉의 돌탑군에서는 저 멀리 함백산 정상을 장식하는 거대한 돌탑이 손짓하듯 한눈에 들어오고, 천제단까지 거침없이 내달리는 능선의 용틀임이 압권이다.

그 태백산을 더 신령스러운 산으로 만드는 나무가 있다. 아니 그냥 나무가 아니라 영물이라고 해야 걸맞은 표현이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生千年, 死千年)’을 간다고 해 ‘나무의 왕’으로 통하는 주목이다. 태백산 고지에 오르면 곳곳에 아름드리 주목이 말 그대로 널려 있다. 태백산을 ‘주목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한겨울에 살을 에는 눈보라를 이기고, 고산의 수호신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주목을 만나면, 경외감 마저 들 정도이니 주목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산의 역사가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태백산 문수봉∼천제단 이동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천년 주목. 사계절 어느 때 보아도 철 따라 변신하면서 기상을 뽐내는 모습이 압권이다.
▲ 태백산 문수봉∼천제단 이동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천년 주목. 사계절 어느 때 보아도 철 따라 변신하면서 기상을 뽐내는 모습이 압권이다.

얼마나 긴 생명을 살았는지, 굵은 나무 기둥이 거의 뼈대만 남았는데도 꿋꿋하게 푸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주목의 기상은 겨울 산 모든 상록수의 멋과 기품을 압도한다. 이미 말라 죽은 고목이라도, 그것이 주목의 고사체라면 나무의 기품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 천년의 상록수들이 칼바람 한설을 온몸으로 이기면서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그 어떤 웅변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그런데 태백산의 겨울은 정말 맵디맵다. 물론 운 좋게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설산을 만나는 때도 있지만, 태백산, 소백산, 설악산 등 고산준령의 겨울 칼바람은 등산객에게는 최고의 난적이다. 그러나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듯이 태백산의 겨울 진경도 그런 고난을 감내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그 또한 자연이 건네주는 즐거움이다. 필자의 경험을 보태자면, 태백산 천제단에 오른 어느 날, 너무 세찬 눈보라 때문에 수십m 앞 천제단의 형체도 제대로 분간키 어려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흑백의 수묵화나 그 옛날 흑백 필름이 더욱 진한 울림을 남기듯, 그날의 산행은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겼다.

▲ 태백산 문수봉∼천제단 이동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천년 주목.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 태백산 문수봉∼천제단 이동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천년 주목.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덧붙여 태백산 등산의 난도를 소개하자면, 태백산은 1500m가 넘는 고산이지만, 산행 들머리인 유일사나 당골 주차장이 해발 700∼800m 고지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등산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해발 표고도 700∼800m 정도여서 다른 고산에 비해서는 수월하게 설산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거리는 당골광장에서 문수봉까지는 4.3㎞, 당골광장에서 천제단까지는 4.4㎞, 유일사 주차장에서 천제단까지는 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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