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은 ‘바닷속 유령’으로 불린다.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그 유령이 동해바다의 불안과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이다. 1998년 6월 22일 새벽, 속초 동쪽 11마일 해상에서는 북한 잠수정이 우리 어선의 그물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한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해군 특수전 요원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 동해항으로 예인된 잠수정 안에서는 9명의 북한 승조원이 시신 상태로 떠올랐다. 이어 20여일 뒤인 그해 7월 12일 동해시 어달동 바닷가에는 잠수복 차림에 기관총 등을 소지한 북한의 무장간첩 시체 한구가 파도에 떠밀려왔다. 수색에 나선 우리 군(軍)은 그날 정오 무렵, 시체 발견 장소에서 70m쯤 떨어진 바다에서 3~5명까지 매달릴 수 있는 해안침투용 수중 추진기 1대를 추가로 인양했다.

잠수함 도발의 정점은 ‘강릉 안인진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이었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안인진 대포동 해변에서는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암초에 걸려 떠올랐다. 곧바로 전군(軍) 비상령이 발령되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추격과 교전이 강원도 산간을 이 잡듯 뒤지며 무려 49일간 이어졌다. 침투한 공비들은 1명이 생포되고, 13명이 사살됐다. 또 11명은 침투 당일 도주 중에 목숨을 끊은 채 시체로 발견됐고, 1명은 끝내 행방을 찾지 못했다. 아군 11명이 소탕 작전 중 산화하고, 민간인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다. 상처뿐인 냉전의 비극이었다.

그때 안인진 해변에 떠올랐다가 안보·통일 교육용으로 침투 현장에 전시되던 북한 잠수함이 최근 동해 1함대로 옮겨졌다. 28년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부식이 심화하고 관광객도 현저히 줄어든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강릉의 북한 잠수함이 그렇게 용도 폐기됐지만, 도발과 위협 수위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북한이 수도 서울을 ‘전술핵 타깃’으로 하는 초대형 방사포 사격 훈련을 감행하기도 했다.

잠수함 도발이 한창이던 때는 그 바다를 통해 금강산 관광이라는 반전도 있었건만, 오늘 한반도의 평화 시계는 30년 세월을 비웃듯 거꾸로만 가고 있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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