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플리. 국내외 ‘띵곡(명곡)’들 속 이야기와 가사를 통해 생각(Think)거리를 선물하는 ‘플레이리스트’. 계절이나 사회 이슈 등에 맞는 다양한 곡을 선정, 음악에 얽힌 이야기나 가사 등과 함께 추천합니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장르와 시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최신 팝 음악부터 숨겨진 명곡까지 다양한 음악 메뉴를 내놓겠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와 흐름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입니다. 띵플리 여섯번째 시간에는 공허와 사랑, 그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흐를 곡들을 남기고 간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이야기로 안내합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1983∼2011) - You Know I’m No Good


연기 자욱한 지하… 관능적인 눈빛으로 읊조리기 시작한다. 왠지 모를 미안함.

Meet you downstairs in the bar and hurt / Your rolled up sleeves in your skull T-shirt‘

둘러싼 남자들, 으르렁 거리는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밀당과 술냄새 맡듯이 더듬는 사내들…

You say ‘what did you do it with him today?’ /And sniffed me out like I was Tanqueray

그리고 고백, 아니 조롱한다. 말했잖아 난 썩 좋은 여자는 아니라고…

“I cheated myself/ Like I knew I would / I told you I was trouble / You know that I’m no good”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시대.

뉴욕타임즈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부고의 글을 올렸다. “그렇게 천박해 보이면서도 위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박과 위대.

그 단어 사이에 놓여있는 어마어마한 간극은 한 젊은 여가수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으리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들린다. 그 공간은 대중의 조롱과 비난, 측은으로 채워져 있다면 과장일까.

그의 마지막 말이 된 ‘평범하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재능을 다가져도 좋아’는 그러한 삶의 상징이다. 천재와 약쟁이로 대표되는 양 극단의 평가 속에 놓인, 혹은 가로 막힌 중간의 어느 지점. 어디에선가 가슴에 새겨둔 누군가를 기다리는 평범한 에이미. 동네 모퉁이 어느 카페에서 노래하는 낙으로 히히덕거리며 시시껄렁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그 에이미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었다. 재능의 위대함과 자본의 사악함, 관종들의 음험한 눈길은 늘 그를 추적하고 노출시켰다.

▲ 에이미 와인하우스
▲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미는 1983년 영국 런던 사우스게이트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그의 장례식도 유대인식으로 치러졌다) 에이미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 어머니는 약사.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결국 혼자 남은 에이미는 주로 재즈 뮤지션이었던 할머니의 결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를 발탁한 것도 할머니였다. 학교의 작은 공연에서 노래하는 에이미를 보고 단박에 물건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할머니는 사실상 에이미의 전체 삶은 관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인생의 스승인 아버지를 잃은 뒤 섹스 중독에 빠져 끝없는 나락에 빠졌다면 에이미는 할머니를 잃은 뒤 우즈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만큼 그는 연약했다. 같은 나이에 사망한 조니스 재플린이 어릴 적 놀림 받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마약과 남자에 탐닉한 것처럼 에이미도 할머니의 죽음과 소녀적 연약함, 과도한 대중의 관심 속에서 그 공허를 채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의 남편이자 가장 쓰레기 같은 남자로 치부되는 블레이크 필더시빌(Blake Fielder-Civil)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비난을 감당하기 힘들다면서도 “그 연약함이 앨범과 작곡을 사람들과 연결하는 부분인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에이미는) 자기가 싫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물론 자기 면피성 발언으로 보이지만.

에이미는 그의 나이 20살인 2003년 살람 레미, 커미셔너 고든, 지미 호가스, 맷 로우와 함께 ‘Frank’를 발매했다. 음반 이름은 본인이 가장 좋아한 원로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얘기도 있고 본인의 솔직함 같은 것이 배어있다는 말도 있다.
 

▲ 에이미 와인하우스
▲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미를 보고 나는 최근 사망한 가수 ‘현미’를 떠올린다.(너무 세대차이가 날 수 있겠다. 공공연히 에이미의 추종자라고 밝힌 백예린이나 안지영도 아니고 현미라니…)

현미는 60년대 가장 주목받던 미8군 무대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들은 적은 없지만 ‘케세라 세라’로 유명한 가수 도리스데이(Doris Day)의 ‘Secret Love’를 도리스 본인 보다 더 잘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어쨌든 상단으로 올라간 헤어 스타일이며 짙은 눈썹화장, 그리고 중저음의 풍부한 목소리는 왠지 40년을 넘는 시공을 훌쩍 뛰어넘는 느낌이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에이미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1960년대 여성그룹의 복원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는 1950∼60년대 소울 사운드를 현대식으로 재해석, ‘빈티지 소울’이라는 장르를 대중적으로 이끌었다.

여기저기서 워낙 많은 60년대 가수들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1924∼1963)이 대표적인 가수다. 에이미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다이나 워싱턴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재즈를 듣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엘라 피츠제럴드를 들었어요. 그러다 좋은 재즈 음반들을 많이 갖고 있는 오빠가, ‘아냐, 다이나 워싱턴이야’ 하더라고요. 다이나 워싱턴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죠.”

이와 함께 60년대 여성걸그룹의 재연이라는 음악사적 위치도 간과할 수 없다.

1960년대 비틀즈보다 인기가 더 좋았다는 슈프림스(The Supremes·리듬 앤 블루스 음악으로 인기가 높았던 미국의 흑인 여성 트리오. 전설의 다이애나 로스가 활약함), 더 로네츠 (The Ronettes) 등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가채를 올린 듯한 그 상단머리….

생각난 김에 로네츠의 ‘Be My Baby’는 반복되는 그 ‘비 마 베이비’로 뚜렷이 각인된 노래, 오랜만에 새삼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2007년 발표된 ‘Back to Black’은 그야말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1960년대 활동했던 여성그룹은 완벽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당시 모든 음악기술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잘 준비된 기획과 빼어난 여가수, 그리고 초절정의 프로듀싱이 결합돼 60년대 여가수 전성시대를 열었다. 에이미의 ‘Back to Black’은 바로 그 방식대로 제작됐다고 한다. 소리에 소리를 쌓듯이 층층을 올려 빈 공간 하나 없이 빽빽이 채워나가는 방식.

그래서 에이미는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하던 댄스 걸그룹의 대체재로 각광받았다. 기계적 소음과 눈요기식 댄스, 마치 찍어낸 듯한 걸그룹 음악에 식상한 일반인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He left no time to regret

Kept his dick wet

With his same old safe bet

Me and my head high

And my tears dry

Get on without my guy

(Back to Black)


해석하기도 참 거시기한 이런 거침없는 내용은 블레이크 필더와의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압축하고 있다. 약쟁이 두 연인의 기괴한 일상은 노래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들의 가학적 사랑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라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베고 물고 뜨고 할퀴며 서로 전율한 것이다. 에이미는 이런 저런 인터뷰에서 그와의 잠자리를 여러 번 언급했을 정도로 집착했던 듯 싶다.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들에게 끌리는 이유에 대해 주진형 강원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지리나 문화를 통틀어서 자신과 자녀를 보호해줄 권력, 지위, 경제력, 신체 능력 등을 중요시하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나를 오래 보호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남자를 고른다고 되어있다. 배신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나쁜 남자를 고르는 일부 소수 여자들은 마조이스틱(masochistic)한 것 아닐까? 마조히즘(masochism)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니까”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 그래미상을 받은 에이미 와인하우스
▲ 그래미상을 받은 에이미 와인하우스

좌우간 이 앨범에 수록된 ‘You Know I’m No Good’, ‘Rehab’ 등의 곡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 2월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신인 등 주요 세 부문을 비롯해 모두 5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현장에는 있을 수 없었다. 미국이 그의 사생활을 문제삼아 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영국 아티스트들에게 인색했던 그래미가 에이미에게 5관왕을 안기자 당시 전혀 예상을 못했던 듯 너무나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호사다마. 이 광경을 보던 일부 지인들은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미상 수상은 대중들과의 접촉을 그렇게 싫어하던 에이미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화제를 불러모았다. “저 수상이 아마 앞으로 에이미를 망칠 거야”

이 불행한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또 다시 그런 시간들, 다시 나타난 블레이크, 더 독한 크랙, 더 난잡해진 사생활. 그가 떠난 자리에 빈 보드카병 세 개가 덩그러니 남았다. 혈중 알콜농도가 치사량을 넘어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마침 다가오는 5월 에이미를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 감독은 샘 테일러 존슨이 맡았고, 배우 머리사 아벨라가 와인하우스 역을 연기한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Back to Black’.

 

▲ 4월 개봉을 앞둔 전기 영화 ‘Back to Black’ 티저 영상 갈무리
▲ 4월 개봉을 앞둔 전기 영화 ‘Back to Black’ 티저 영상 갈무리

사실 2집이 너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1집 ‘Frank’에서 보여준 그의 재기발랄과 유머, 그리고 의미심장한 독설은 우울 가득한 2집과 비교된다. 그래서 ‘Stronger than me’라는 곡이 계속 귀에 걸리는 지도 모르겠다.

You should be stronger than me

넌 나보다 강해야 해

You’ve been here seven years longer than me

나보다 7년은 더 살았잖아

Don’t you know you‘re supposed to be the man?

이젠 남자가 돼야 한다는 거 몰라?

Not pale in comparison to who you think I am

네가 아는 나보다는 나아야지


북런던 출신의 한 소녀가 평생 저주하며 도발했던 자본주의 길들이기는 실패로 끝났다. 또 다시 그를 추억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를 상업주의로 소환한다. 그가 남긴 빈 보드카병들처럼 시대를 뒹굴다 그렇게 허망하게 소비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좀 더 강해져야하는 이유다. Ja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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